본고는 왕권과 도덕적 권위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는 양상을 성종의 右文政治를 통해서 살펴보려는 목적 하에 기획되었다. 성종은 재위 기간 동안 성실히 經筵에 임하고 正學과 이단의 분별을 명확히 하며 조선의 국정이 성리학에 기초해야 함을 천명하고 있었다. 또한 성종은 대간의 언론을 우용하고 홍문관이 언관화 되는 과정에서도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 유교적 왕도정치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었다. 성종의 이 같은 태도에 힘입어 그의 치세는 세조대나 예종대에 비해 훨씬 더 안정적인 정치 운영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15세기 후반의 상황에서 군왕이 성실한 學人의 면모를 견지하며 언관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정치 운영 방식은 새로운 부담을 갖게 되는 것이기도 했다. 즉 누가 더 公的 가치에 근거하고 있는가를 놓고 국왕이 신료들과 경쟁하는 위치에 놓이게 됨으로써, 강압적으로 신료들을 제압하던 군주들에 비해 국정 장악력이 약화되는 측면이 없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대간과 홍문관이 公論을 통해 국정 전반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시켜 가고, 다양한 언론관행들을 조성해 가며 군주의 자의적인 정치 운영에 제동을 걸고 있었을 뿐더러, 성리학에 기초한 수사들을 통해 이 같은 언론 활동을 정당화시키고 있던 상황에서, 왕도정치의 추구와 정학의 수호를 천명하고 있던 성종으로서는, 그리고 강압적인 방식으로 신료들을 제압하지 않는 국정 운영을 고수하고 있었던 성종으로서는, 階序的 권력질서 및 是非 주도권의 약화를 용인할 수밖에 없는 난처한 입장에 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