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신광수의 이후에 나온 평양 죽지사의 창작 양상을 논의한 것이다. 18세기 후반에 가 나온 뒤 19세기 중반에 張之琬이 를, 金濟學이 을 지으면서 장형의 평양 죽지사가 재등장했다. 장형의 죽지사가 대개 어떤 지역의 전모를 보여준다는 특성을 감안할 때, 이 두 작가는 모두 평양의 제반 요소들을 포함한 를 염두에 두고 최대한 새로운 평양 죽지사의 모습을 띨 수 있도록 노력했을 것이다. 본고는 이들 작가의 주제의식을 따라가면서 이 두 작품에 나타난 새로운 성취와 그 의미를 짚어보고자 했다. 이 두 작품 모두 를 염두에 두고 지었지만, 장지완은 평양을 가서 직접 본 것을 중심으로, 김제학은 평양에 가지 못한 상태에서 관련 지식 정보를 가지고 작품을 썼다. 그런 점에서 이 두 작품은 평양의 수려한 산수와 경제적 풍요, 번화한 분위기를 모두 가져오고 있지만 신광수의 에서 강렬하게 드러난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이미지는 거의 발견할 수 없다. 장지완은 감영에서 목도한 기생의 현실에 특히 주목하여 이들의 일상적인 삶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담아냈고, 김제학은 평안도 지역으로 대상을 확대하면서 역사적 사건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 장지완의 에 평양에 대해 알려진 것과 자신이 실제로 보거나 겪은 것과의 괴리감이 새롭게 추가되었다면, 김제학의 에는 직접 본 평양의 모습은 아니지만 평양의 정보를 집대성한 추가적 정보들이 반영되었고 비판적인 태도가 한층 강해졌다. 이 두 작품은 그런 점에서 모두 평양을 바라보는 당대의 인식 변화를 담게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