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형법학자 플레처(George G. Fletcher)가 주창한 집단책임(collective guilt)론이 최근 국내외 학계에서 다각도로 검토되고 있다. 형법상 책임은 개인책임이 원칙이지만 이제 집단책임이 본격적인 학문적 논쟁의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새 불어 닥친 전 세계적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는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던 많은 것 들에 대해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바로 기업과 법의 적절한 관계도 그 중 하나며, 경제와 법을 지배하던 자유주의 사조에 대한 맹목적 신뢰도 그러하다. 이는 형사적 영역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동안 경제영역에 대한 형법의 투입은 이른 바 형법의 보충성 원칙에 입각해 필요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 사고였 다. 경제영역은 고유의 원리에 의해 자율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법의 과도한 개입, 특히 형사처벌이라는 강력한 방식으로 그 자율적 작동원리를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2년의 아더 앤더슨에 대한 유죄평결에서 볼 수 있듯, 대위책임에 의해 전통적으로 법인의 형사책임을 인정해 왔던 미국 법원도 근래 들어 기업에 대한 형사소추를 보다 용이하게 해주는 새로운 법리를 적용하기 시작했고, 그동안 법인의 형사책임을 부정했던 국가들도 상당수가 입법을 통해 법인처벌이 가능토록 하는 추세 다. 바야흐로 기업활동에 대한 형사 규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본고는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자유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며 ...